허지웅이 다스 베이더를 좋아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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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명훈 작성일21-01-29 14:52 조회17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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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아버지를 찾아간 적이 있다. 새벽에 일어나서
똥을 싸다가 문득 그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연락을 했다.
문자를 보냈고, 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아버지와는 중학생 이후로 왕래가 없었다.
그날 아침 내가 왜 갑자기 찾아갈 생각을 했던 건지 잘 모르겠다.
다만 아버지를 만나 대답을 들어야 할 것들이 있었다.
그 대답을 듣지 않으면 앞으로도 잘 살아나갈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원주는 추웠다. 아버지는 원주에 있는 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교수를 하고 있었다.
터미널 앞에서 만났다. 중학교 시절에 멈춰 있는
내 기억 속의 아버지 차는 언제까지나 하얀색 엑셀이었는데
다른 차를 보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만남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그저 우리 둘 다 이런 종류의 만남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차로 이동하는 동안 나는 아버지가 이 만남에 대해 내심 꽤 감동하고 있으며,
내게도 같은 종류의 감동이 전해지길 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뜨거운 화해를 하러 거기 간 것이 아니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 사무실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 전공분야에 관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마저도 어색하고 거대한 구멍을 메우기 위한 용도였지만,
놀랍게도 유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내가 물어보고 싶은 건 따로 있었다.
군대를 전역한 뒤 돈이 없어서 복학을 하지 못하고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세 개씩 하다가 탈진을 해서 쓰러진 날이 있었다.
그날 밤 나는 고시원 앞에서 소주 두 병을 억지로 한꺼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음이 가는 동안
입술을 얼마나 깨물었는지 정말 피가 났다.
도움을 구걸한다는 게 너무 창피했다. 모멸감이 느껴졌다.
아버지 도움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언제까지나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백기를 들고 전화를 한다는 게 끔찍했다.
그 와중에 소주는 알코올이니까 이 상처가 소독이 되어서 덧나지 않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아버지가 교수로 있는 대학교에서 자녀 학비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 너무 힘들어서 그러는데 나중에 전부 갚을 테니까
제발 등록금을 내주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했다.
월세와 생활비는 내가 벌 수 있다, 당장 등록금만 어떻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예상되는 상대의 답변이 있을 때 나는 그 답변을 듣기 싫어서
최대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버릇이 있다.
그날도 그랬다. 등록금도 갚고 효도도 하겠다는 이야기를 한참 하고 있는데
등록금과 효도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아버지가 대답을 했다.
그날 원주의 사무실에서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왜 능력이 있으면서도 자식을 부양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왜 등록금마저 주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
후회하고 있다
”고, 아버지는 말했다.
아버지 입에서 후회라는 단어를 목격한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후회하고 있다, 는 말은 짧은 문장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는 만족스러웠다.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 건 왜 내가 아버지에게 미움 받아야 하는지였다.
대체 내가 뭘 잘못해서 학교에서 공짜로 나오는 학비 지원금마저
주고 싶지 않을 만큼 미웠는지 하는 것 따위 말이다.
부모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게 나는 반평생 슬프고 창피했다.
그래서 타인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는 건 일찌감치 포기했다.
남의 눈치 보면 지는 거라고 위악적으로 노력하다 보니
‘쿨병’이니 뭐니 안 좋은 말이 쌓여갔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남에게 결코, 다시는 꼴사납게 도움을 구걸하지 않고
오로지 혼자 힘으로만 버텨 살아내는 것만이 중요했다.
구체적이지 않았지만 후회하고 있다는 말로 내게는 충분했다.
삶이란 마음먹은 대로 안 되기 마련이다. 아버지도 잘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후회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후회하고 있다는 그 말에 나는 정말 태아처럼 안도했다.
아버지가 “
그래도 네가 그렇게 어렵게 산 덕분에
독립심이 강한 어른이 되어서 혼자 힘으로 잘 살고 있으니 다행
”이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날의 만남은 그걸로 끝이었다.
아버지를 본 건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중에 연락이 몇 번 왔지만 받지 않았다.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자신도 어렸을 때는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친구 같은 부모 자식 사이가 되고 싶었다는 아버지의 말을 계속해서 곱씹었다.
아, 자신이 원하는 어른으로 나이 먹어가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살다 보면 3루에서 태어난 주제에 자신이 흡사 3루타를 쳐서
거기 있는 것처럼 구는 사람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나는 평생 그런 사람들을 경멸해왔다.
그런데 이제 와 돌아보니 내가 딱히 나은 게 뭔지 모르겠다.
나는 심지어 3루에서 태어난 것도 3루타를 친 것도 아닌데
‘아무도 필요하지 않고 여태 누구 도움도 받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혼자 힘만으로 살 수 있다’ 자신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자신감이 건강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에 와서야 그것이 착각이라는 걸 깨닫고 있다.
어떤 면에선 아버지 말이 맞았다. 그게 누구 덕이든,
나는 독립적인 어른으로 컸다. 아버지에게 거절당했듯이
다른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게 싫어서 누구의 도움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도움을 구하거나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고 멀쩡한 척 살아왔다.
시간이 흘러 지금에 와선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능력도,
타인의 호의를 받아들일 줄 아는 능력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혼자서밖에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좋은 어른은커녕 이대로 그냥 독선적인 노인이 되어버릴까,
나는 그게 너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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